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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한국과 러시아가 수교한지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양국 정부가 2020~2021년을 상호 문화 교류의 해로 지정하고, 러시아 이고르 모이세에프 발레단의 방한으로 첫 공식 행사를 시작합니다.
발레단이라고 이름 붙여졌지만 이고르 모이세에프 발레단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마린스키 발레단이나 볼쇼이 발레단처럼 백조의 호수 지젤 같은 작품을 공연하지는 않습니다. 1937년 설립된 모이세에프 발레단은 발레와 현대무용의 기술을 바탕으로 전 세계 민속무용을 새롭게 안무한 작품을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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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 이고르 모이세에프(1906~2007)는 20세기 러시아의 전설적인 무용가이자 안무가입니다. 볼쇼이 발레학교를 거쳐 1924년 볼쇼이 발레단에 입단한 그는 무용수로 각광받았다. 특히 민속춤을 발레에 녹인 캐릭터 댄스를 잘했다. 안무에도 관심이 있었던 그는 24세 때인 1930년 축구를 소재로 한 작품 '축구경기'를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원래 <축구 경기>는 볼쇼이 발레단의 정기 공연을 앞두고 펑크 난 레퍼토리를 채우기 위해 서둘러 만든 것이었는데, 그의 재능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덕분에 소련 당국의 주목을 받은 그는 1930년대 들어 모스크바 광장에서 열린 대형 퍼레이드 안무를 자주 담당했다. 1936년 소련 당국이 주최한 제1회 민속무용 페스티벌에도 깊이 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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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성공했지만 1936년 기대됐던 볼쇼이 발레단의 새로운 수석 발레 마스터가 되지는 못했다. 낙담하는 대신 그는 민속춤을 당당한 작품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합니다. 민족무용이 독자적인 예술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당시 그의 아이디어는 정말 혁명적이었어요.
무용단을 창단한 그는 단원들과 소련 곳곳에서 민속 무용 자료를 모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1938년의 "소련의 민속 춤"과 1939년의 "발트(발트 3국은 당시 소련의 영토)의 민속 춤"입니다.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모이세에프 발레단은 소련 전역을 투어하는 것은 물론 해외에서도 공연을 했다고 합니다. 특히 볼쇼이 발레단이 1956년 런던을 시작으로 유럽과 미국을 방문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전에 이미 모이세에프 발레단이 방문했다고 합니다.
모이세에프는 1943년 무용단 산하에 세계 최초의 민속 무용학교까지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민속무용은 전통적인 민속무용과 똑같지 않다고 한다. 민속무용의 중요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새롭게 안무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4분10분가량의 작품 대부분이 소련 등 슬라브 지역의 민속무용으로 제작됐는데 세계의 여러 민족을 레퍼토리로 했다고 한다. 한국(북한)의 민속무용을 소재로 한 작품도 있다고 한다. 현재 모이세에프 발레단의 레퍼토리는 300여 개에 이르는데 그가 200여 개를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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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세에프는 연예인 댄서가 아니라 군무를 작품의 근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발레단의 댄서는 창설 이래, 거의 슬래브계였습니다. 1940~60년대 한국계 댄서가 이곳에서 활동한 적이 있습니다. 비비안나 박(1928~2013)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자 북한 부주석을 지낸 박헌영이고, 어머니도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주세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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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일제 강점기에 부모가 수시로 투옥됐기 때문에 모스크바 근교의 보육원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그 후 모이세에프 민속무용학교를 졸업한 후 무용수를 거쳐 40년간 교사로 동양무용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녀의 운명은 기구해서 1953년에 박홍영은 북한에서 숙청되었고, 주세죽은 소련 강제수용소에 있다가 타계했다고 합니다.한-러 수교 이듬해인 1991년 그녀의 존재가 국내에 처음 알려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서울을 방문하여 친척들을 만나곤 했습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94년 모이세에프 발레단의 첫 내한공연이 성사됐다고 합니다. 다만 러시아를 대표하는 무용단임에도 불구하고 모이세예프 발레단은 당시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아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26년 만에 이뤄진 이번 내한공연에서는 모이세에프 발레단의 진가를 강하게 알게 될 겁니다.
이번 내한공연에서 모이세에프 발레단은 러시아 민속무용으로 만든 <여름(Summer)>을 비롯해 몰도바, 북한, 우즈베키스탄, 그리스, 베네수엘라, 스페인 민속무용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모이세에프가 볼쇼이 발레단 시절에 안무했던 <축구>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문·장지영(국민일보 기자,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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